가보고 싶은곳들...
내 삶의 이야기/잡다한 이야기 2004. 10. 12. 18:21요즘 가보고 싶은 곳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선선하고 어디든 떠나고 싶다.^^
[화왕산/우포늪]
화왕산은 선사시대 화산으로 지금 3개의 못(용지)은 화산의 분화구가 있으며, 이못과 전설이 있는 창녕 조(曺)씨의 득성비가 있고 정상부 둘레에는 화왕산성(사적64호)이 있으며 성내는 잡목이 없는 억새로 이루어진 약 5만 6천여 평의 초원이 펼쳐져 있어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이 찾고있다. 화왕산은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여름이면 억새초원, 가을에는 황금빛 억새물결, 겨울에는 설경이 유명하다.특히 봄에는 진달래 군락 5-6곳에 수십만평이 장관을 이루며 가을에는 매년 10월에 화왕산 갈대제가 펼쳐지는데 이 행사는 산상에서 펼쳐지는 야간행사로는 국내에서 최대규모이자 최초의 행사로 많은 산악인이 찾고 있다.
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늪이다.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와 이방면 안리,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에 걸쳐있는 70만평.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늪지에는 수많은 물풀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부들, 창포, 갈대, 줄, 올방개, 붕어마름, 벗풀, 연꽃 등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늪에 반쯤 밑둥이를 담그고 있는 나무들이 '원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발이란 미명아래 국내 많은 늪은 사라지고 이제 늪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곳은 국내 한 곳. 바로 우포늪 뿐이다. 뭍도 아닌 물도 아닌 늪, 국내 최대규모의 온갖 풀, 나무, 곤충, 물고기, 새 그리고 인간을 품에 안은 자애로운 곳. 1억 4천만년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지막 자연늪인 우포는 산으로 둘러싸여 개발이란 탐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던 '생태계 박물관' 바로 그것이다.(경향신문 1996/5/30) 이젠 보존해야할 우포... 우포늪은 1997년 7월 26일 생태계보전지역중 생태계특별보호구역(환경부고시 1997-66호)으로 지정되었으며 국제적으로도 1998년 3월 2일 람사협약 보존습지로 지정되었다. 이제 우포는 세계인이 지켜보는 보존해야 할 곳이 된 것이다.
화왕산은 선사시대 화산으로 지금 3개의 못(용지)은 화산의 분화구가 있으며, 이못과 전설이 있는 창녕 조(曺)씨의 득성비가 있고 정상부 둘레에는 화왕산성(사적64호)이 있으며 성내는 잡목이 없는 억새로 이루어진 약 5만 6천여 평의 초원이 펼쳐져 있어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이 찾고있다. 화왕산은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여름이면 억새초원, 가을에는 황금빛 억새물결, 겨울에는 설경이 유명하다.특히 봄에는 진달래 군락 5-6곳에 수십만평이 장관을 이루며 가을에는 매년 10월에 화왕산 갈대제가 펼쳐지는데 이 행사는 산상에서 펼쳐지는 야간행사로는 국내에서 최대규모이자 최초의 행사로 많은 산악인이 찾고 있다.
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늪이다.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와 이방면 안리,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에 걸쳐있는 70만평.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늪지에는 수많은 물풀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부들, 창포, 갈대, 줄, 올방개, 붕어마름, 벗풀, 연꽃 등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늪에 반쯤 밑둥이를 담그고 있는 나무들이 '원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발이란 미명아래 국내 많은 늪은 사라지고 이제 늪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곳은 국내 한 곳. 바로 우포늪 뿐이다. 뭍도 아닌 물도 아닌 늪, 국내 최대규모의 온갖 풀, 나무, 곤충, 물고기, 새 그리고 인간을 품에 안은 자애로운 곳. 1억 4천만년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지막 자연늪인 우포는 산으로 둘러싸여 개발이란 탐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던 '생태계 박물관' 바로 그것이다.(경향신문 1996/5/30) 이젠 보존해야할 우포... 우포늪은 1997년 7월 26일 생태계보전지역중 생태계특별보호구역(환경부고시 1997-66호)으로 지정되었으며 국제적으로도 1998년 3월 2일 람사협약 보존습지로 지정되었다. 이제 우포는 세계인이 지켜보는 보존해야 할 곳이 된 것이다.
[창덕궁]
창덕궁은 조선조 태종 5년(1405)에 지어진 경복궁의 이궁으로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광해군 때부터 경복궁 재건 전까지 약 270년 간 법궁의 역할을 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창건 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을 한꺼번에 완성시켰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 2천 평이던 후원(현재의 후원)을 넓혀 15만여 평의 규모로 영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해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 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다. 현재 조선시대 궁궐 후원(뒤쪽에 자리잡은 정원을 말하며 왕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곳)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창덕궁으로, 그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곳의 전통 정원에 비할 수가 없다고 한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 위원회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은 조선조 태종 5년(1405)에 지어진 경복궁의 이궁으로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광해군 때부터 경복궁 재건 전까지 약 270년 간 법궁의 역할을 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창건 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을 한꺼번에 완성시켰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 2천 평이던 후원(현재의 후원)을 넓혀 15만여 평의 규모로 영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해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 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다. 현재 조선시대 궁궐 후원(뒤쪽에 자리잡은 정원을 말하며 왕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곳)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창덕궁으로, 그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곳의 전통 정원에 비할 수가 없다고 한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 위원회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헤이리]
헤이리는 다양한 문화장르가 한 공간에서 소통하는 문화예술마을을 지향합니다. 1997년 파주출판도시와 연계한 ‘책마을’을 구상한 데서 태동되었으며 그 진행과정에서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면서 ‘문화예술마을’로 개념이 확장되었습니다. 현재 작가, 미술인, 영화인,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 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헤이리에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등의 문화예술공간을 짓고 있습니다. 마을 이름은 경기 파주지역에 전해져오는 전래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습니다.
헤이리는 다양한 문화장르가 한 공간에서 소통하는 문화예술마을을 지향합니다. 1997년 파주출판도시와 연계한 ‘책마을’을 구상한 데서 태동되었으며 그 진행과정에서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면서 ‘문화예술마을’로 개념이 확장되었습니다. 현재 작가, 미술인, 영화인,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 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헤이리에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등의 문화예술공간을 짓고 있습니다. 마을 이름은 경기 파주지역에 전해져오는 전래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습니다.
[송소고택]
송소고택 (덕천동 심부자댁)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3호 (1985. 12. 30 지정)
주소 :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76번지
규모 : 7동 (99칸)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영조(英祖)때 만석(萬石)의 부(富)를 누린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에 이거하면서 지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1880년경에 건립되었다. 대문은 솟을 대문에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큰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크고 화려한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다. 우측에 작은 사랑이 있고 그 뒤로 안채가 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의 교창을 달았다.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으며,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별당은 2채인데, 하나는 대문채이고 또 하나는 별당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송소고택 (덕천동 심부자댁)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3호 (1985. 12. 30 지정)
주소 :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76번지
규모 : 7동 (99칸)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영조(英祖)때 만석(萬石)의 부(富)를 누린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에 이거하면서 지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1880년경에 건립되었다. 대문은 솟을 대문에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큰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크고 화려한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다. 우측에 작은 사랑이 있고 그 뒤로 안채가 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의 교창을 달았다.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으며,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별당은 2채인데, 하나는 대문채이고 또 하나는 별당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봉평]
가산 이효석 선생은 1907년 2월23일 강원도 평창 봉평면 창동리273번지(현재의 창동리 남안동 4리4반 681번지)에서 출생하여 1942년5월25일 평양에서 급환으로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젊은 시절 한창 실의에 잠기기도 하였으나 창작 활동의 활기를 되찾아 초기에는 경향성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던 이효석은 수닭을 계기로 차츰 향토를 배경으로한 서정적인 세계로 이행해 나갔다. <화분>에 이어 같은 작품으로 그는 자연과 인간의 본능을 시적 경지로 끌어 올렸다 는 평을 받았으며 <메밀꽃>은 한국단편문학의 기념비 적인 작품으로 남아있다.
가산 이효석 선생은 1907년 2월23일 강원도 평창 봉평면 창동리273번지(현재의 창동리 남안동 4리4반 681번지)에서 출생하여 1942년5월25일 평양에서 급환으로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젊은 시절 한창 실의에 잠기기도 하였으나 창작 활동의 활기를 되찾아 초기에는 경향성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던 이효석은 수닭을 계기로 차츰 향토를 배경으로한 서정적인 세계로 이행해 나갔다. <화분>에 이어 같은 작품으로 그는 자연과 인간의 본능을 시적 경지로 끌어 올렸다 는 평을 받았으며 <메밀꽃>은 한국단편문학의 기념비 적인 작품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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